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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주간지에서 펜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슬로우어답터만의 꼼꼼함(?)과 인사이트로 이 급변하는 세계를 다른 시각으로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duryd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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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리더십과 선배의 역할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상식적으로 생각했던 리더라면 어떻게 하고,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믿음이 깨졌기 때문이죠. 


조직에서 전혀 리더답지 못한 이가 리더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조직에서 전혀 리더답지 않은 언행을 해도 별 문제가 안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조직에서 전혀 리더답지 않은 리더에게 후배들이 소통을 요구해도 무시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조직에서 전혀 리더답지 않은 리더가 내세운 소통은 소위 일방적 소통인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후배들은 리더답지 않은 리더 앞에서 이를 지적하거나, 이게 정 안되면 윗선에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후배들의 이야기가 효과를 발휘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후배들은 이야기합니다.

"그들도 후배 시절 그런 선배들을 보면서 욕을 했을텐데, 왜 선배가 되면 똑같아지나?"라고 말이죠.


직장인이라면 많은 이들이 공감할 것입니다.


어느 덧 직장생활 15년 정도 되어갑니다.

선배가 됐죠.

그런데 저는 선배 역할이 더 무섭습니다.

제가 후배였을 때 선배들에게 따졌던 이야기가 있거든요.

여전히 그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기에, 후배들에게 이야기 하나 하는 것도 두렵습니다.

술좌석에서 후배와 많은 이야기를 하고 집으로 돌아갈 때 후회한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내가 왜 그렇게 이야기를 많이 했을까.

나는 왜 그렇게 지적질을 했을까. 

나는 왜 후배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았을까.

다음부터는 이야기를 줄이고 귀를 기울여야겠다 등등...





오늘 매경 삽지가 저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스티브 잡스나 일론 머스크의 사진 때문이 아닙니다.

'IT 구루'로 불리는 돈 탭스콧의 인터뷰 기사였습니다.

10월 매경에서 주최했던 '제16회 세계지식포럼' 연사로 참여했던 돈 탭스콧을 인터뷰했더군요.

(참고로 팀황이라는 23살 천재도 연사로 참여했습니다.

FiscalNote 창업자입니다.

제가 인터뷰를 했고, 포브스코리아 12월호에 나올 예정입니다.

이 친구 매력과 왜 FiscalNote를 CNN이 세계를 바꿀 혁신적인 스타트업이라고 칭찬했는지에 대한 기사를 쓸 계획입니다. 

팀황 대표에 대한 기사를 쓰는데 많이 부담이 됩니다.너무 똑똑하고 기발한 젊은이거든요.) 



돈 탭스콧은 인터뷰에서 리더와 선배의 역할에 대해 좋은 조언을 했습니다.  

- 리더가 '디지털 비전'을 갖기 위해 직원들과 해야 할 일은.

'역 멘토링(reverse mentoring)이 있다. 기성세대들이 어린 친구들에게 조언을 하는 것에 대한 반대 개념으로 젊은 직원들이 기성세대에게 조언을 해주는 것이다. 나에게는 멘토가 5명 있다. 모두 20대다.


-한국 기업의 리더들은 이런 패러다임을 어떻게 깰 수 있는가. 

젊은 친구들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젊은 직원들 문화에는 새로운 직장 문화가 있다. 그리고 젊은 직원들 말을 들으면 새로운 시장과 새로운 고객들을 찾을 수 있다. 내가 딱 한 가지 조언을 한다면 바로 젊은이들 말을 들으라는 것이다.


20년 전 <디지털 이코노미>라는 책으로 인터넷 세상을 예견했던 구루가 기업가에게 지적하는 것이 소통이었습니다. 

저도 따끔하게 가슴에 새겨놓을 이야기입니다.


리더답지 않은 리더들의 가장 큰 문제점이 이게 아닐까요.

내가 옳고, 너희들은 틀리다라는 착각.


오늘 신문에 나온 전면광고를 보면서 또 한번 한숨을 쉬었습니다.

이런 게 퇴행 아닐까요. 

21세기에 '인사 잘하는 대학'이라는 게 캐치프레이즈가 되는 상황, 저는 이해가 안됩니다.

시대는 변하는데, 변화를 거부하는 세상과 사람들의 반응에 힘이 빠지는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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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기사를 보니 '청년희망재단' 이사장에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대표가 선임됐네요.







벤처 1세대인 황 대표는 자수성가형 성공 기업가로 꼽히죠.

박근혜 정부 출범 당시 중소기업청장에 내정되어 주목을 끌기도 했습니다.

당시 현역 기업인이 중소기업청장에 오르는 첫 번째 기록을 쓸 뻔한 분이죠.

당시 주식 백지신탁 문제가 걸려 있어서 자진 사퇴를 했습니다.

중소기업청장을 맡았으면 중소기업의 애로점을 많이 해결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아쉽죠.

벤처기업협회장도 역임했고, 청년기업가재단 이사장도 맡고 있습니다. 

청년기업가재단은 사재까지 넣어서 만든 재단입니다.

이번 청년희망재단까지 포함하면 청년들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을 알 수 있죠. 

개인적으로 청년희망재단은 정부가 드라이브를 걸어서 시작했는데요.

생명력이 얼마나 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여튼 또 한번 어려운 일을 맡으신 황 대표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지난 8월 황 대표를 인터뷰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기억이 나네요.


혹시 황철주 대표에 대해 궁금한 게 있으면 읽어보셔도 될 듯 합니다. 

그때 기사 내용 중에 정말 죄송한 게 있었는데, 나중에 술자리에서 사과는 드렸지만 여전히 송구스럽네요-_-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대표 

혁신과 창조로 일군 20년 벤처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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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을 탄 작가의 작품을 꼭 읽어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그런데 트위터를 통해 이 작가의 작품이 큰 울림이 있다고 해서 겁없이 도전했습니다. 



한때 '창작과비평' '이상문학상 수상집'을 옆구리에 끼고 다닌 적이 있습니다.

정말 한때죠.

대학교 1학년부터 3학년때까지 그랬던 것 같습니다.

당시 계간지 '창작과비평'은 문학과 사회과학의 최신 트렌드를 알 수 있는 매체였으니까요.

이상문학상은 왠지 읽고 싶었습니다.

솔직이 이상문학상과 창비는 읽기가 힘들었습니다.

특히 이상문학상 작품집은 특유의 문체와 주제의식이 있어서 상당히 난해한 작품들이 많았죠.

하지만 그때 어렵게 읽었던 것들이 나중에 제 글쓰기 어딘가에 들어가 있을 겁니다.


얼마 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라는 발표가 떴죠.

트위터가 대단하기는 합니다.

그 수상자가 쓴 책 번역서가 있다면서, 주제가 묵직하다는 트윗이 바로 올라오더군요.


노벨문학상 작품집을 그다지 찾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작가의 책은 바로 아들과 교보문고에 간 김에 샀습니다.

여성이 겪는 전쟁, 그리고 기자 출신의 작가, 다큐와 픽션의 사이(읽어보니 다큐에 더 가까운 듯 합니다)

무엇보다 전쟁과 여성이라는 묵직한 소재가 색달랐습니다.

오랜만에 아들 책을 사주면서 저도 호강을 하게 됐습니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


처음 읽기에는 딱딱했습니다.

첫 부분은 작가가 취재하면서 겪은, 작가가 이야기를 들으면서 겪은 감정의 변화 등을 

격정적으로 혹은 담담하게 묘사했습니다.

원고를 다 썼는데 왜 책이 안나오는지, 여성작가로서 여성이 겪은 전쟁을 왜 파헤치게 됐는지

자신의 글이 과연 옳은 것인지 등등에 대한 고민이 나옵니다.

글이 딱딱할 수 밖에 없죠. 

 

이 후에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여성들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술술 읽으면서도 음, 책을 넘기는게 무척 힘듭니다.

예상을 뛰어넘는 전쟁에 대한 묘사와 여성이 직접 경험한 전쟁의 참혹함이 나오거든요.

이 부분을 읽을 때 오히려 작가의 마음상태를 적은 앞의 글이 훨씬 읽기가 편해졌습니다.

왜 작가가 이 이야기를 했는지, 왜 그토록 고민을 했는지 등을 쓴 것을 보니 

이해가 되더군요.


기자 출신이다 보니 디테일에 강합니다.

전쟁 묘사도 팩트를 기반으로 하는 디테일을 잘 보여줍니다.


그런데 읽을수록 먹먹해집니다.

읽을수록 힘들어집니다.

읽을수록 책을 덮고 싶어집니다.

읽을수록 책의 무게에 힘이 빠집니다.


오랜 취재, 다양한 취재원 저는 이 작가가 어떻게 버텼는지 용한 것 같습니다. 

나라면? 음 힘들어서 중간에 포기했을 것 같거든요.


전쟁에 대한 이미지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여성이 겪은 여성이 직접 참여한 전쟁은 상상 이상으로 무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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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4일 중앙일보 1면에 나온 교세라그룹 이나모리 회장의 기사를 읽어보셨나요. 

살아있는 '경영의 신'으로 존경받는 인물입니다.



교세라그룹 이나모리 회장 옆에는 우리의 포프께서도 환하게 웃고 계시네요. 

오바마 대통령이 두손을 모으고 영접하는 장면도 인상적이네요. 


한국에도 이 분의 책이 많이 번역이 되었습니다. 

저는 카르마 경영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한솥의 이영덕 대표와 인터뷰를 하는데 이분의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러면서 "내가 선택을 해야 할 때마다 읽는 책"이라며 사인과 함께 저에게 선물해줬습니다. 

이영덕 대표와 인터뷰도 상당히 재미있었습니다.

이나모리 회장에 대해서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는데,

더욱 궁금증이 나더군요.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도 이나모리 회장이 열고 있는 '세이와주쿠' 모임 멤버더군요. 

이영덕 대표가 힘들 때 이 모임에 참석해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합니다. 

후배 기업가들이 이나모리 회장의 이야기를 들으면 힘을 얻는 듯 합니다.

1+1=10. 이 문구는 주성엔지니어링 공장에서도 본 것입니다.

황철주 대표도 이나모리 회장을 좋아하나 봅니다.  


바로 읽어봤습니다. 


카르마는 불교 용어로 '업보'라는 뜻을 가지고 있죠.

책은 편안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거대 담론이나 철학적인 내용을 담은 게 아닙니다.

경영현장에서 기업가가 지켜야 할 덕목을 쉽게 풀어놨습니다.


카르마경영을 읽고 난 후의 느낌...

음..

여러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학창시절에 배웠던 윤리나 도덕 교과서에서 볼 수 있는 내용들입니다.

상식적인 이야기입니다.

직원의 행복을 만들어줘야 한다

기업가로서 도덕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기본을 지켜야 한다 등등.


상식적인 내용일 뿐인데도 울림이 컸습니다.


얼마 전 탱그램팩토리 정덕희 대표를 만나 점심을 먹었습니다.

요즘 스마트로프를 해외에 보내느라 공장에서 살고 있더군요.

공장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 이야기를 정 대표가 했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하더군요.

자신이 만든 제품에 하자가 없도록 수작업을 하는 아주머니들에게

젊은 CEO로서 기분좋게 만들어주려고 노력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공장에 갈 때마다 아이스크림이라도 사들고 가고

농담도 걸어주고.

추석에는 한우로 공장 모든 분들을 대접한다고 약속했다고 하더군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나모리 회장에 대한 이야기를 제가 곁들였습니다.

"정 대표의 모습이 신선하게 보이는 것처럼

이나모리 회장의 평이한 주장도 울림이 있었다"고 했죠. 


생각해보면 이나모리 회장의 이야기가 울림이 있는 것은 그만큼 사회가 각박해진 것 같습니다.

경쟁위주, 승자독식의 사회다보니 우리는 기본을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싶어요.

정 대표가 공장에서 힘들게 일하는 노동자들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동반자로 여기는 것이 이제는 보기 힘든 장면입니다.

그런데도 정 대표는 그런 기본기를 탄탄하게 가지고 있죠.

정 대표의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따스해집니다.

이나모리 회장의 이야기도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가 잊어버렸던 인간의 덕목을 일깨워주기 때문 아닐까요.


저는 어떤지 오늘 중앙일보 기사를 보고 다시 한번 반성해봅니다.


기본과 상식을 지킨다는 게 정말 어려워진 사회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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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호 취재원 중에 기억에 남는 이는 정덕희 탱그램팩토리 대표입니다. 

기사에 쓰지 못한 내용도 많습니다.

정덕희 대표와의 인터뷰는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실컷 수다를 떤 느낌이었습니다.

정 대표의 어려웠던 시절과 개인적인 고민들, 사업을 두고 오고간 많은 제안들까지 

이런 부분들은 기사에 녹여내지 않았습니다.

다행히도 기사에 대한 반응도 좋더군요.

임정욱 센터장도 일 때문에 만났을 때 

"정 대표가 그런 사람인 줄 처음 알았다" "재미있게 읽었다"고 말해주셔서 고마웠습니다. 


정덕희 대표와 인터뷰를 하면서 눈물이 나올 뻔한 적도 있습니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비빌 언덕이 되고 싶다"는 말은 괜한 게 아닙니다.

정 대표는 정말 비빌 언덕이 되고 있더군요.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감동적이고 코끝이 찡해오는 사연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이 일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오겠죠. 


어제(6월8일) 스타트업계에 화제가 된 뉴스가 떴습니다. 

다음카카오가 정 대표가 설립한 탱그램디자인연구소를 자회사로 편입한 것입니다.

탱그램팩토리의 최대 지분을 탱그램디자인연구소가 보유하고 있습니다. 

다음카카오가 탱그램팩토리를 인수한 것이나 마찬가지죠.

다음카카오가 탱그램디자인연구소 지분 51%를 인수하고, 

경영은 현재처럼 정 대표가 책임을 지는 형식입니다.


어제 우연하게도 정 대표와 저녁 약속이 있었습니다.

저녁 약속 장소로 가기 전 정 대표가 이와 관련된 소식을 문자로 찍어주더군요.


저녁식사가 정말 유쾌했습니다.

인수 과정에서 생긴 일은 정말 흥미진진하더군요.

원래 다음카카오는 투자를 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케이벤처그룹 투자심사역들이 정 대표의 비전과 철학에 감명을 한 듯 합니다. 

제가 정덕희 대표에게 받았던 느낌을 케이벤처그룹 투자심사역들도 똑같이 받은 거죠. 

투자를 이유로 만났던 만남이 결국 인수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비전과 철학이 뚜렷한 CEO는 주위 사람을 즐겁게 해줍니다.   

그리고 세상을 놀라게 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또 놀라운 소식들이 있을 것 같네요. 


정덕희 대표 정말 축하합니다.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창업자이기도 합니다.


혹시 정 대표에 대해 궁금한 분이 있다면

제 기사를 읽어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정덕희 탱그램 팩토리 대표 - 목표는 2017년 ‘1조 클럽’ 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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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라는 것이 자신을 알리는 데 참 좋은 도구인데, 사실 콘텐츠를 채워나가는 게 쉽지는 않네요.

마감 때문에 블로그를 들여다보지 못했는데, 샘표 박진선 대표의 기사에 대해 '홍보기사'라고 댓글을 달아놓은 사람이 있더군요.

댓글에 신경을 쓰는 편은 아니지만, 비판의 핀트가 너무 어긋났더군요.

박진선 대표가 기업을 운영하면서 보여주는 경영 철학에 대해서 기사는 이야기를 하는데

갑자기 매출이 적으니 문제가 있다는 결론이 나오는 이유가 뭔지.

잡플래닛을 보니 샘표에 대한 만족도가 오뚜기보다 훨씬 높더군요.

1000조원 매출을 올리는 회사에서 높은 연봉을 받으면 일하는 것도 좋은 일이죠.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내가 거기에서 일과 회사에 만족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겪어보면 알게 됩니다. 


역시 댓글은 사람의 기력을 소진시키는 힘이 있는 듯 합니다.

뭐 어쨌거나....


제가 요즘 눈여겨 보는 직업이 있습니다.

디자이너입니다. 

우연히도 디자이너 출신의 사업가를 연달아 취재를 하게 됐네요.

한명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디렉터로 일하는 유영규씨

또 다른 한명은 유영규씨의 직장 후배이기도 한 탱그램팩토리 정덕희 대표입니다.


두 사람은 공통점이 꽤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일류대학 출신이 아닙니다.

고향도 서울이 아닌 지역입니다.

실력으로 그 자리까지 올라온 거죠.

정덕희 대표는 가난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신문배달을 해야 했습니다.

유영규 대표도 대기업 입사 후 초반에 고생을 많이 했더군요.

무엇보다 두 사람 모두 디자이너 출신의 사업가(유영규 디렉터도 클라우드앤코라는 기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라는 점입니다.


디자인을 중심에 놓고 제품을 만들고, 디자인을 중심에 놓고 프로젝트를 합니다.


두 사람을 인터뷰하면서 '디자인 철학이 없는 기업은 뒤쳐지겠구나'라는 생각을 절로 했습니다.

디자이너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다르더군요.


정덕희 대표의 스마트로프는 정말 대박입니다.

1조원 매출을 목표로 한다는 배포도 정말 놀라웠습니다.

그런데 가능할 것 같습니다. 


유영규 디렉터가 마이크로소프트의 비밀 프로젝트인 '홀로렌즈'를 맡고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죠.

마이크로소프트를 책임지는 사람으로 꼽힌 것도 기분좋게 합니다.



유영규 디렉터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홀로렌즈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있죠. 

마이크로소프트가 제공한 동영상을 보면 홀로렌즈 프로젝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왜 제가 잘 알지도 못하는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지 유영규 디렉터의 인터뷰를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영규 마이크로소프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 마이크로소프트의 미래를 디자인하다 



정덕희 대표의 인터뷰도 포브스코리아에 실리면 읽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정 대표의 프라이버시에 관련된 내용은 기사에 올리지 않았습니다.

많은 부분을 쳐내야 했지만, 그래도 정 대표의 인터뷰를 읽어보면 디자이너의 힘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탱그램팩토리에서 출시한 스마트로프입니다. 

정식 출시는 9월 정도 될 듯합낟. 

줄넘기를 하면 카운팅된 숫자가 허공에 떠오릅니다. 

이 사진은 홍보용이기 때문에 숫자가 2015 이렇게 보여지지만

원래는 줄넘기 하는 사람 눈에 숫자가 보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반대방향으로 숫자가 보입니다.

 


참고로 배달의민족 앱을 만든 우우한 형제들 김봉진 대표도 디자이너 출신이죠.

김 대표에 대한 기사도 읽어보면 디자이너의 힘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네요. 


뒤끝 작렬한 이야기하나만 더 하겠습니다.

댓글을 읽고 아하 그렇구나라거나, 저를 되돌아볼 수 있는 생각이 있는 댓글은 언제든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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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마감한 기사 중의 하나가 '핀테크'입니다.

Finance와 Technology의 합성어죠.

요즘 세계는 핀테크 열풍입니다.

하지만 한국은 핀테크 분야에서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이와 같습니다.

페이팔이 한국에 본격 상륙했을 때,

혹시 애플 페이를 한국에서도 사용할 수 있을 때,

알리페이가 중국 관광객을 업고 한국에 뿌리내렸을 때

과연 한국에서 이에 대응할 수 있는 기업이 있을까요.


카카오페이, 네이버 페이, 삼성 페이 등이 요즘 나오고 있는 핀테크 기술입니다.

이들을 믿어야겠죠.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또 한번 불같이 확 타오르는 한국인의 기질이 있으니 핀테크 분야에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릅니다.

이건 희망사항입니다.


핀테크 기사를 작성하다가 뒤늦게 생각나는 사람이 한명 있습니다. 

피터 틸(Peter Thiel)입니다.

핀테크 기업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페이팔의 공동 창업자죠.

<Zero to One>이라는 책으로 큰 사랑을 받기도 했습니다. 



지난 해 11월 한국에 소개된 책인데, 상당히 많이 팔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국 젊은이들에게 피터 틸이 상당히 유명하더군요.



지난 2월 25일 피터 틸이 한국에 왔습니다.

책을 펴낸 한국경제에서 섭외를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상당히 바쁜 일정이더군요.

한국 강연이 끝나면 바로 일본으로 건너가는 일정이었습니다.

피터 틸 같은 거물이 한국에 왔는데도 인터뷰 기사가 안 나온 이유입니다.


2월 25일 오후 3시30분, 서울 삼성동 서울컨벤션센터에서 강연이 열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왔더군요.

기업에서는 단체로 신청을 해서 강연회에 참석을 했습니다.

2002년 이베이가 페이팔을 14억 달러에 인수했습니다.

스타트업으로 피터 틸은 억만장자가 됐죠.



강연회 분위기가 후끈 했습니다.

아이디어 하나로 억만장자가 된 이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하나라도 놓칠까봐

강연 분위기가 정말 진지했습니다.



저도 상당히 기대를 하고 강연회에 참석했습니다.

강연회에 가기 전에 미리 책을 읽어봤구요.


이날 강연회를 듣고 나서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는 속담이 생각났습니다. 

'경쟁이 아닌 독점을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라' '유행에 휩쓸리지 마라' 등

책에 나온 이야기와 그동안 했던 이야기만 했습니다.

한국 스타트업에 대한 이야기나, 한국의 IT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잘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자신이 그동안 해왔던 주장과 이야기만 다시 하는 강연회였던 거죠.


다만 기억나는 것 하나가 있습니다.

기사에도 썼는데요.

핀테크의 유행이 걱정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이죠.


이런 치열한 경쟁에서 한국 IT 기업들이 어떻게 헤쳐나갈까요.


Posted by duryd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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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게임 업계에서 가장 핫한 인물이 4시33분 권준모 의장입니다.

손을 댄 게임마다 대박을 치고 있으니까요.

교수 출신의 게임 개발사이자 퍼블리셔의 대표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권준모 의장과 인터뷰는 새로웠습니다.

'틀을 깨자'라는 주제의 이야기가 인터뷰의 화두가 됐습니다.

회사 이름인 4시33분의 의미를 찾는 기자와

틀을 깨라는 인터뷰이의 대화가 계속 이어졌던 거죠.


심리학과 교수이기 때문에 솔직히 인터뷰할 때 좀 꺼려졌습니다.

나의 이야기를 듣고 내 마음을 알아채면 어떻게 하나하구요.

권 의장도 저에대해서 뭔가를 느끼셨을텐데,

고맙게도 별다른 이야기는 안해주셨네요.


나중에 술한잔 할 때 한번 상담받아봐야겠어요^^







“4시33분 기업가치 3조원 넘을 것” 

 

최영진 포브스 기자  
글로벌 메신저 플랫폼 라인과 중국의 텐센트가 한국 모바일 게임 퍼블리셔 4시33분에 1300억원을 공동투자했다. 한국 게임업계에 처음 있는 일이다. 4시33분 권준모 의장은 “라인과 텐센트의 날개를 달고 세계에 진출할 것”이라며 2015년을 게임 수출의 원년으로 삼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심리학과 교수 출신인 4시33분 권준모 의장은 틀에서 벗어나야 색다른 것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2014년 11월 10일 한국 모바일게임 업계에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라인과 텐센트가 한국 모바일게임 퍼블리셔(유통기업)인 4시33분에 1300억원을 투자한 것. 한국 게임업체 중 라인과 텐센트가 공동 투자한 곳은 한 곳도 없다. 라인과 텐센트는 라인과 위챗으로 대표되는 글로벌 메신저 플랫폼으로 모바일게임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라인과 텐센트가 경쟁을 잠시 접고 공동투자한 것은 무슨 의미일까. 게임업계 관계자는 “라인과 텐센트가 단독 투자하려고 물밑 경쟁을 했을 게 뻔하다. 그런 상황에서 4시33분이 공동투자를 이끌어낸 것이다. 두 회사가 어쩔 수 없이 공동투자에 응한 것에서 4시 33분의 미래를 얼마나 크게 평가했는지 알 수 있다”고 분석했다.

모바일게임 제작사이자, 퍼블리셔인 4시33분은 요즘 모바일게임 업계에서 가장 핫하다. 게임업계는 2015년 기업공개(IPO)를 앞둔 4시33분의 기업가치를 1조원 이상으로 예측한다. 회사이름만큼 창업자의 이력도 독특하다. 권준모(50) 의장은 심리학과 교수로 일하다 게임업계의 아이콘이 됐다. 요즘 게임업계에서 가장 손잡고 싶어하는 퍼블리셔로 꼽히는 4시33분 권 의장을 만나 2015년 계획을 들어봤다. “2015년은 4시33분의 에너지가 폭발하는 한 해가 될 것이다. 해외진출에 적극 나설 것”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4시33분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나온 것인가. 존 케이지의 4분33초라는 곡에서 따왔다는 설도 있던데.

존 케이지는 4분33초를 통해 리듬과 멜로디가 있어야 음악이라는 통념에 도전했다. 존 케이지의 의도는 내가 추구하는 철학과 연결되지만, 회사이름을 4분33초에서 따온 것은 아니다. 2009년 회사를 창립할 때 회사 이름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기업 CI를 만드는 후배에게 의뢰해봤지만 별 성과가 없었다. 어느 날 집사람이 4시33분 로고를 만들었는데 너무 좋았다(권 의장 부인은 조각가 황혜선씨다). 그 로고를 공동창업자들에게 보여줬는데 다들 좋다고 했다. 그래서 회사 이름을 4시33분으로 정했다.

4시33분이 의미하는 바가 있을 것 같다.

왜 회사 로고가 파란지, 4시32분이 아니고 4시33분인지를 물어보고 싶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물어본다. 나는 그런 질문이 틀에 박혔다고 생각한다. 회사 임직원에게 틀에서 빨리 벗어나라고 요구한다. 틀을 벗어나야만 색다른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4시33분에 특별한 의미와 의도는 없다. 그냥 좋아서 회사 이름으로 사용했다.

미국의 전위예술가 존 케이지가 만든 4분 33초는 3악장으로 된 곡이다. 각 악장에는 음악 용어인 ‘tacet’(침묵이라는 의미)가 적혀있다. 1악장 33초, 2악장 2분 40초, 3악장 1분20초로 구성됐다. 4분33초 동안 연주자는 아무 연주도 하지 않는다. 권 의장은 4분33초를 설명하면서 ‘틀을 깨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 의장의 철학은 그의 인생살이와 비슷하다. 서울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컬럼비아대학 대학원에서 심리학 석사와 박사를 취득했다. 경희대학 교육대학원과 경희사이버대학에서 심리학 교수로 재직했다. “정해진 삶, 고정된 마음보다는 움직이는 게 좋다”면서 교수를 그만두고 제자들과 함께 2001년 9월 엔텔리젼트라는 게임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이후 넥슨모바일 대표, 넥슨 공동대표, 한국게임산업협회 회장 등을 지내면서 게임업계를 대표하는 인사가 됐다. 제자를 도와 주려고 했던 일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된 것이다. 권 의장은 “원래 게임에 관심이 많았다”며 웃었다.

교수직을 그만둔 것을 후회하지 않나.

처음에는 제자를 도와주자는 생각이었다. 회사 법인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다보니까, 마치 호랑이 등에 올라 탄 느낌이었다. 떨어지든지 달리든지 선택해야만 했다.

게임과 심리학,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게임은 굉장히 심리학적이다. 게임할 때 타인의 기록을 깨려는 심리가 게임을 하는 동기가 된다. 어렸을때 갤러그, 대학교 때 스트리트 파이터 같은 게임을 좋아했다. 미국 유학시절 온라인 게임을 처음 접했다. 한 학기 동안 게임에 빠져 살 정도였다. 게임이 인기를 끄는 이유가 뭔지 연구하고 싶어 동기심리학을 전공했다. 게임과 심리학은 연관성이 깊다.

2001년 제자들과 창업한 엔텔리젼트가 큰 성공을 거뒀다.

당시 창업하면서 어떻게 차별화할지 가장 많이 고민했다. 액션게임을 출시했는데, 당시에는 그런 장르가 없었다.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췄고 이 때문에 성공을 거둔 것 같다.

2004년 엔텔리젼트에서 출시한 모바일게임 ‘삼국지 무한대전’은 게임업계에 권준모라는 이름을 알린 계기였다. 당시 누적 다운로드 200만 건을 기록했고, 이후 ‘삼국지 천하통일’ 성공으로 이어졌다. 2005년 5월 권 의장은 엔텔리젼트 지분을 모두 넥슨에 넘겼고, 넥슨모바일 대표로 취임했다. 넥슨모바일에서도 메이플스토리 등의 성공신화를 썼고, 2006년 10월 넥슨 공동대표 자리에 올랐다. 당시 권 대표는 넥슨을 연매출 5000억원을 올리는 게임기업으로 키워냈다. 2008년 넥슨 대표에서 물러나고 1년 후 4시33분을 창업했다. 권 의장은 “넥슨에 엔텔리젼트 지분을 넘길 때 3년 동안 함께 일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그 후 넥슨을 나와 제자들과 함께 4시33분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4시33분이 요즘 게임업계에서 가장 핫한 회사가 됐다.

모두 실패한다고 말한 게임으로 성공했다. 카카오게임 중에서 처음으로 카톡 회원과 실시간으로 맞붙는 게임이 ‘활’이었다. 다들 어렵다고 했지만 우리에게 활은 너무 재미있는 게임이었기에 출시를 결정했다. 모바일게임의 틀을 깨고 싶어 시도했는데, 결과가 너무 좋았다. 4시33분을 있게 한 또 다른 게임이 ‘블레이드’다. 출시 1년도 안됐는데 1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 게임도 성공한다고 예상했던 이가 드물다. 우리가 자체 개발한 ‘회색도시’도 마찬가지다. 다들 실패한다고 했다. 이 같은 성공으로 4시33분은 틀에 얽매이지 않는 회사라는 이미지가 강해졌다.

4시33분과 손잡고 싶은 곳이 더욱 많아졌을 것 같다.

경쟁이 매우 치열해졌다.(웃음) 하지만 우리는 변한게 없다. 우리가 퍼블리싱한 게임은 매년 10개가 안된다.(2013년 10월부터 2014년 10월까지 4시33분이 출시한 게임은 7개에 불과하다) 다른 퍼블리셔와 비교하면 매우 적다. 우리는 게임 출시보다 게임 성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출시 게임이 적을 수밖에 없다. 진정성이 높은 게임사라면 우리와 함께 일할 수 있을 것이다.

라인과 텐센트의 공동투자가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2015년은 4시33분의 해외진출 원년이 될 것이다. 텐센트를 통해 한국 게임이 중국에 진출한다. 일본과 동남아시아는 라인의 힘을 빌려 진출이 쉬워진다. 우리에게만 좋은 게 아니다. 한국 게임계도 중국과 동남아시아 진출이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글로벌 기업 라인과 텐센트와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노력 하겠다.

게임업계의 이슈 중 하나가 4시33분의 IPO다.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2015년에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일각에서는 4시33분의 가치를 1조원이라고 하던데, 나는 3조~4조원으로 보고 있다. 자신 있다.

2015년 계획은.

본격적인 해외 진출이다. 4시33분의 에너지가 분출 되는 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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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하면 소싸움이죠.

하지만 저에게는 디자이너와 개그맨의 고장으로 남아 있습니다.

바로 최복호 최복호패션문화연구소 대표 덕분입니다.


종교 전문 기자였던 김석종 경향신문 국장께서 '만인보'라는 것을 연재 중입니다.

고은 시인의 만인보와 같은 형식이죠.

그곳에서 처음 보고 한번 인터뷰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분이 최복호 대표입니다. 


대구와 청도가 활동의 본거지인데 운이 좋게 서울에서 만나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런데 청도에 만든 패션문화연구소가 너무 궁금했습니다.

몰래길도 보고 싶었죠.


그래서 가족 여행 겸해서 청도로 떠났습니다.

패션문화연구소에서 다시 한번 최 대표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환갑이 넘은 패션디자이너지만, 삶에 대한 정열적인 태도는 제가 본받아야 할 정도입니다.


여름에 가족들과 함께 다시 청도에 가보려고 합니다.

청도 참 매력적인 도시더군요.


참, 소싸움 경기장 규모와 시스템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청도가 소싸움에 얼마나 많이 투자를 하고 있는지 알겠더군요.


청도 볼거리도 의외로 많은 고장입니다. 









청도 몰래길 만든 ‘문화 독립군’ 

경북 청도 비슬산 자락에 파묻혀 사는 패션디자이너 최복호.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유명 디자이너지만, 그는 여전히 도시가 아닌 자연을 좋아한다. 패션디자이너가 산골 청도에서 사는 이유를 들어봤다. 

최영진 포브스 기자   사진 김현동 기자

▎대구 패션계의 산증인 최복호 디자이너는 경북 청도 비슬산 자락에 최복호패션문화연구소를 짓고 갤러리와 야외공연장을 운영한다.
제주도에 올레길이 있다면, 경북 청도 비슬산 기슭에는 ‘몰래길’이 있다!

제주도 올레길이야 일본·영국 등에 수출된 문화상품으로 전 국민이 다 아는 유명한 길이다. 소설가 김훈의 에세이 『자전거 여행』으로 제주도에 한때 자전거 여행 열풍이 불었지만, 지금은 ‘제주도=올레길’이 됐을 만큼 올레길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제주도 올레길 얘기를 하다가 누군가 난데없이 ‘경북 청도에도 몰래길이 있는데 유명하데’라고 말하면 대부분 코웃음을 칠 것이다.

청도는 예로부터 반시(홍시)와 소싸움의 고장이다. 청도의 먹거리 반시는 단맛이 일품이고, 짜릿한 소싸움은 청도의 대표적인 볼거리다. 여기에 청도 몰래길도 인기를 끌고 있다. 올레길 짝퉁 냄새가 폴폴 나지만, 인터넷에 몰래길을 검색하면 깜짝 놀라게 된다. 청도의 유명 문화상품으로 떡하니 존재하기 때문이다.

개그맨 전유성과 손잡고 다양한 프로젝트 펼쳐


▎최복호패션문화연구소에 마련된 갤러리는 작품 전시회나 공연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 공간이다. 지역주민에게 사랑받고 있다.
몰래길은 경북의 명산으로 꼽히는 비슬산 중턱에서 출발해 헐티재를 넘어가는 트래킹 코스다. 산불 예방을 위해 임시로 만들어진 길을 걷는다. 완주 시간은 걸어서 1시간30분~2시간 정도로 왕복 4시간 거리다. 몰래길을 걷다보면 천에 소원을 써서 걸어놓은 것이나, 마치 단풍잎처럼 나무에 매달린 짜투리 천을 볼 수 있다. 누군가 몰래길에 체험 프로그램을 결합시켰음을 알 수 있다. 비슬산 중턱에서 출발한 몰래길 종착지는 철가방처럼 생긴 공연장 부근이다. 개그맨 전유성씨가 운영하는 코미디 공연장 ‘철가방극장’이다.

몰래길의 시작과 끝 지점에 몰래길을 알리는 비석이 서 있다. 군청에서 만들어 설치한 비석이다. 몰래길을 만든 주인공 두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다. 한 사람은 전유성, 또 한 사람의 이름은 최복호다. 전유성이라는 이름에는 고개를 끄떡이지만, 최복호(65)라는 이름에는 갸우뚱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만일 최복호라는 이름을 알고 있다면 패션계 혹은 문화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몰래길의 시작은 하얀 건물과 몽골 게르처럼 생긴 텐트가 있는 공간이다. 이곳이 최복호패션문화연구소다. 서울과 청도에서 만나 인터뷰를 한 이 사람, 알고보니 너무 유명하다. 대구패션조합 이사장을 지냈을 만큼 대구의 패션계를 대표하는 디자이너다. 120억원의 연매출을 올리는 문화패션기업 C&BOKO(Culture & BOKO)를 운영하는 기업가이기도 하다.

대구가 아닌 청도에서도 최 대표가 유명해진 것은 전유성씨와 손잡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선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문화 독립군’으로 부른다. “청도에 기거하는 사람은 원주민과 이주민, 그리고 원주민도 아니고 이주민도 아닌 이를 독립군이라고 한다. 나는 청도에서 문화 독립군으로 살고 있다.”

자신보다 6개월 전에 청도에 온 전유성씨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서로를 알아봤단다. “2008년 산골짜기를 찾아 비슬산에 들어왔는데, 그때 전유성씨를 처음 만났다. 프로는 프로가 알아본다고, 딱 봤을 때 그의 안목이 느껴졌다.”

두 사람이 만든 대표적인 히트작이 몰래길이다. 원래 이 길은 사람들 눈을 피해 연인들이 자주 이용하던 데이트 코스였다. 몰래길이라는 이름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청도군은 몰래길에 이어 몰래길2를 내놓으면서 트래킹 코스를 확대하고 있다.

최 대표를 설명하는 또 다른 단어는 ‘펀앤락’(Fun & 樂). 평생 그가 붙잡고 있는 화두다. 비슬산 자락에 최복호패션문화연구소를 짓고 청도에 들어온 이유다. “전유성씨는 이곳을 숲속 양장점이라고 부른다.” 최복호패션문화연구소에는 ‘펀앤락’이라는 이름의 갤러리와 샵, 야외공연장, 글램핑 텐트가 자리 잡고있다. “나만 흥겨움에 취할 게 아니라 모든 사람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며 사과밭 3300㎡(1000평) 부지에 복합문화공간을 만든 이유를 설명했다.

이곳은 지역 문화예술인의 사랑방이자, 지역주민의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전유성씨와 손잡고 한 달에 한 번 공연을 기획한다. 최근에는 가수 민해경씨의 콘서트가 열렸고 노사연, 변진섭, 전영록 등 많은 가수가 이곳에서 노래를 불렀다. 대구지역 패션인의 송년회도 이곳에서 열렸다. 비슬산 자락에 살고 있는 200여 명의 예술인들도 가끔 이곳을 찾는다. “도예가와 식물원 개장을 준비하는 사람과 자주 만난다.”

2014년 7월에는 ‘힐링 글램핑’ 사업도 시작했다. “리조트 사업에 관심이 많았고, 사람들에게 자연속에서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글램핑을 선택 했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인기가 좋다”고 최 대표는 자랑했다. 그가 마련한 글램핑 텐트 내부는 매우 고급스럽다. 최 대표가 직접 디자인한 극세사 이불이 있고, 고급 캠핑 브랜드 제품이 풀세트로 갖춰졌다. 며칠을 머물러도 불편하지 않을 정도다. 글램핑을 이용할 경우 운이 좋으면 최 대표와 소주 한 잔 기울이는 기회도 얻을 수 있다.

패션디자이너는 트렌드에 민감하다. 그런데 왜 최 대표는 도시가 아닌 산속으로 들어왔을까. “사람들은 청담동 또는 뉴욕 거리에서 패션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오히려 자연이 있는 곳에서 영감을 얻고 있다. 패션의 흐름은 매체를 통해 얼마든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최 대표의 작품은 해외에서 자연의 색이 옷에 스며들어 있다는 호평을 받는다.

2014년 12월 10일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열린 ‘제7회 코리아패션대상’ 시상식에서 최복호 대표는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지속적으로 해외 시장을 개척한 공로를 인정 받은 결과다. “일을 저지르는 편”이라며 남들보다 먼저 해외 진출을 시도했던 이유를 설명했다.

최 대표의 이력은 독특하다. 목회자를 꿈꾸며 대구 계명대 철학과를 다니던 학생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신이 무섭다’는 이유로 패션계로 뛰어들었다. “외가가 모두 종교 집안이었다. 집에서는 내가 목회자가 되기를 원했지만, 공부하다보니 성직자의 길은 나와 맞지 않았다.” 그에게 패션디자이너의 길을 알려준 이는 교회 목사였다. “넌 손재주가 좋아서 앙드레 김 같은 패션디자이너가 되면 좋을 것 같다”고 조언을 해준 것. 당시 패션디자이너는 ‘양장쟁이’로 불리며 대접받지 못한 직업이었다.

해외 7개국 24개 매장에서 작품 판매

최 대표는 그 길로 학원을 다니면서 디자이너 공부를 했다. 1973년 ‘의처증 환자의 작품D’라는 작품을 발표하면서 데뷔했다. 제목부터가 독특했던 작품을 눈여겨 본 이가 바로 고 앙드레 김을 배출한 국제패션학원 최경자 원장이다. 최 원장은 그를 연구원으로 발탁했다.

하지만 1974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 대구로 낙향했다. 당시 대구가 섬유산업의 중심지였지만, 패션디자이너로서 성장하려면 서울에서 활동하는 것이 나은 선택이었다. “마음앓이를 심하게 해서”라며 낙향 이유를 설명하며 최 대표는 웃었다. 실연의 아픔 때문이었다.

“지역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하면 많은 제약이 있다. 하지만 난 가만히 있지 않았다. 남들보다 일찍 해외 진출을 시도했고, 시류의 변화에 따라 백화점과 홈쇼핑 등에 진출해 성공했다.”

최 대표가 해외 시장을 두드린 것은 1980년대부터다. 실패도 많이 했지만, 주저앉지 않았다. 자신의 옷을 들고 해외 매장을 뚫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문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 30여년이 지난 지금 그 결과물은 놀라울 정도다.

최 대표의 옷은 해외 7개국 24개 매장에서 팔리고 있다. 특히 쿠웨이트의 경우 8개 패션몰에서 최 대표의 옷을 발견할 수 있다. 2014년 10월 서울에서 열린 서울컬렉션에 참석한 최 대표는 쿠웨이트 바이어와 현장에서 20만 달러(약 2억원) 계약을 맺기도 했다.

해외 진출의 경험을 살려 주력한 것이 디자이너와의 교류였다. “패션의 중심은 이제 유럽과 미국을 거쳐 아시아가 될 것이다. 아시아 시장이 열릴 것을 대비해 해외 디자이너와 다양한 교류를 했다. 아시아에서 열리는 패션쇼에 가장 많이 초청을 받는 디자이너가 나일 것이다.” 그는 상하이·홍콩·파리·뉴욕 등 세계적인 패션쇼의 초청을 받고 있다. 2012년 9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패션위크에 참여했을 때는 배우 우피 골드버그가 ‘The View’라는 자신의 토크쇼에서 최 대표의 작품을 입고 출연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당시 한 패션전문 매체는 “최복호 디자이너의 기발하고 유쾌한 프린트와 의상은 한국에서 레이가와쿠보(일본을 대표하는 패션하우스 꼼데가르송 디자이너)를 발견한 것 같다”는 극찬까지 했다.

최 대표의 이름이 일반인에게도 각인된 계기는 2010년부터 롯데홈쇼핑에서 3년 동안 매출 1위를 차지하면서부터다. 당시 최 대표의 브랜드는 연매출 170억원을 올릴 정도였다. “1990년대 말 홈쇼핑에 도전했을 때는 실패했다. 그 경험을 살려 15년 동안 준비해 대박을 친 것이다.” 다른 디자이너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일을 과감하게 추진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최 대표는 디자이너로서 이룰 것은 이뤘다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이젠 시간이 없다”면서 더욱 재미있는 삶을 만들려고 한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일해야 한다”며 그는 웃는다.

최 대표에게 2015년 계획을 물었다. “목표는 없다. 목표가 없는 곳에서 목표를 만들어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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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를 하다보면 '이 사람 정말 매력적이다'라고 느끼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인터뷰가 끝난 후에도 다시 한번 만나서 술을 마시고 싶은 사람입니다.

인생살이를 서로 공유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문화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사람입니다.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나서도 생각을 다시 해보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같이 공유하고 싶습니다.


오늘은 샘표 박진선 대표 이야기입니다. 


3대째 기업이 이어지고 있죠.

그런데 대기업 오너 3세와는 전혀 다른 3세 경영인입니다.


3세 경영인이 왜 욕을 얻어 먹을까요.

도련님과 공주님으로 대접받고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창업자는 맨땅에서 기업을 일궜고,

2세는 그 모습을 조금이라도 보고 자랐습니다.

하지만 3세는 모든 것이 다 갖춰진 상황에서 자랐습니다.

오냐오냐 하면서 자랐겠죠.

그러니 서민이 뭔지, 아픔이 뭔지, 가난이 뭔지 알겠습니까.

대부분 잘 모르죠.


박진선 대표는 그런 면에서 독특한 3세 경영인입니다.


제가 왜 매력적이라고 하는지 기사를 통해 공유했으면 합니다.

참, 연두가 뭔지 한번 사봤습니다.

라면을 끓일 때 넣고, 스프를 반만 넣어봤습니다.

맛이 괜찮던데요.


박 대표님 시간 내서 소주 한잔 해요^^




간장 아닌 문화를 파는 기업 

 

최영진 포브스 기자   사진 오상민 기자
샘표식품의 기업문화가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갑의 횡포로 사회가 시끄러울 때 샘표의 존재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창업자인 할아버지의 정신을 이어받아 샘표를 문화기업으로 만들고 있는 박진선 대표를 만났다.




▎“기업 경영의 목표는 직원들의 행복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하는 샘표식품 박진선 대표. 샘표는 창립 후 지금까지 단 한번도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하지 않았다.
대기업 3세의 언행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때에 주목받는 기업이 있다. 여타 중견기업과는 다른 경영철학을 갖고 있다고 평가받는 샘표식품이다. 1946년 창립해 할아버지(박규회 창업자), 아들(박승복 회장)에 이어 손자(박진선 대표)가 경영하고 있다. 샘표도 3세가 경영을 하고 있지만, 별다른 잡음이 없다. 오히려 3세 경영인에 대해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다. 2014년 12월 12일 임직원이 직접 작성하는 기업평가 사이트 잡플래닛이 발표한 ‘경영진 만족도 순위’에서도 샘표는 상위권에 올랐다. 이 자료에 따르면 익명의 샘표 평가자들은 ‘수평적인 분위기’ ‘인간적인 사장님’ 등을 언급하면서 경영진에 높은 점수를 줬다.

‘내 가족이 먹지 않는 음식은 만들지도 팔지도 않겠다’는 박규회 창업자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아직까지 품질 때문에 문제가 생긴 적도 없다. 샘표를 경영하는 박진선(64)대표는 경영 목표를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직원의 행복과 소비자에게 좋은 기업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표에게 ‘뭔가 특별한’ 샘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박 대표에게 본지가 인터뷰 제안을 했을 때 “면접 주간에는 인터뷰가 안된다”며 “면접 보는 주는 피하자”는 응답이 왔다. 직원 면접의 중요성을 아무리 인정해도 일주일 동안 대표가 계속 면접에 참여하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직원을 대하는 박 대표의 이야기를 들으면 수긍할 수 있다.

샘표의 면접은 구직자에게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면접은 5일 동안, 즉 일주일 내내 진행된다. 2000년부터 요리 면접도 포함시켰다. 박 대표는 “회사 성격에 맞아 도입했는데, 개인의 성격을 알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다”고 말했다. 팀별로 요리를 하다보면 개개인의 성격이 나온다. 음식을 하다가 돌발상황이 터졌을 때 대응방법이 면접자마다 천양지차라고 한다.

직원 수의 10%를 공채로 뽑는 기업


▎아버지 박승복 회장(왼쪽)과 아들 박진선 대표는 샘표의 창업자인 할아버지의 뜻을 이어서 직원 중심의 회사로 키워냈다. 90세가 넘은 박 회장은 여전히 회사에 출근해 일할 정도로 건강하다.
샘표의 공채가 눈길을 끄는 또 다른 이유는 인원수 때문이다. “현재 직원 수의 10% 정도를 매년 신규채용한다.” 2014년 말 샘표의 직원은 650명 정도. 2014년 말 공채로 뽑는 인원은 60여 명으로 대기업과 비교해도 무척 큰 비율이다.

전체 임직원이 28만 명에 달하는 삼성그룹은 2014년 9000명 정도의 신입사원을 채용했고, LG그룹은 3500명, 현대차그룹은 2500명을 뽑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 임직원수 비율로 따지면 5%가 채 되지 않는다.

“그렇게 많은 직원을 뽑아도 괜찮나”라는 질문에 박 대표는 “직원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며 웃었다. “기업을 운영하는 대표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직원이 무슨 일을 할지, 어떻게 인원 배치를 해야 하는지 큰 그림을 그릴줄 알아야 한다. 2014년 매출은 2013년보다 안좋았고, 매출에 비해 직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공채 인원을 높게 잡는 이유가 있다.”

박 대표가 기업을 경영하는 목표 중 하나는 직원들에게 주 40시간 이상은 절대로 일을 시키지 말자는 것이다. 2014년 한국의 법정근로시간은 40시간이지만, 이를 지키는 기업이 드문 게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박 대표의 발언은 신선할 수 밖에 없다. “직원이 직장에서 40시간씩 일을 하게 되면 회사 생활이 즐겁지 않게 된다. 근로시간을 줄이려면 일하는 사람을 늘리는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샘표의 공채를 통과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수백대 일의 경쟁률은 보통. 그만큼 사람을 뽑는 시간도 철저하고 길다. 박 대표도 일주일 동안 지원자 면접에 꼬박 참여한다. 면접이 늦어져 저녁 늦게 퇴근할 때도 있다.

샘표의 공채에 또 다른 특징은 차별이 전혀 없다는 것. 2013년 공채를 통해 선발된 여성 신입사원 중에는 기혼자가 있었고, 34살 신입사원도 뽑혔다. 여성이라고 해서, 고졸이라고 해서 차별받는 것은 없다. 임신부도 면접을 볼수 있다. 토익점수나 성적, 전공 등도 모두 상관없다. 능력만 있으면 된다. 이런 파격적인 채용이 가능한 건 창업자의 정신이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샘표는 창업 후 지금까지 한 번도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해본 적이 없다. “구조조정은 기업가의 경영능력 부족을 보여주는 증거”라며 박 대표는 목소리를 높였다. ‘직원이 먼저’라는 샘표의 전통을 만든 이는 창업자 고 박규회 회장이다.

1970년대 맥주 용기를 재활용해 간장병으로 썼던 시절. 일용직 아주머니들이 맥주병을 세척했다. 1970년대 중반 산업지원금을 받아 유리병 자동 세척기를 들여올 당시, 창업자는 기계가 들어오기 전 날 일용직 아주머니를 모두 정규직 사원으로 발령 냈다. 1950년대 한국 기업 최초로 주부사원을 고용한 회사가 샘표다.

창업자의 정신은 아들과 손자로 이어졌다. 아들인 박승복 회장은 직원들을 설득(?)해 노조를 설립하게 했다. 노사분규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없었다. 박 대표는 “대표가 하는 일은 샘표의 가치와 철학을 직원과 공유하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회사를 만드는 일”이라고 했다. “월급은 대기업만큼 많지 않지만 회사 다니는 것이 행복한 일이 될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엘리트 의식 내세우지 않는 가풍 이어져


2014년 12월 11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샘표에 과징금을 부과했다. 샘표가 대리점과 특약점에 미리 지정해 둔 거래처에만 간장제품을 판매하도록 한 것 때문이었다. 샘표는 “샘표가 대리점 간 영업구역을 보장해준 것”이라고 해명했다. “대리점들이 샘표에 도움을 요청해 시작한 일이다. 상권을 보호하고, 무리한 출혈경쟁을 막고 대리점간에 상생할 수 있다는 취지였다.”

이 소식에 대해 네티즌들은 오히려 칭찬하는 분위기다. ‘이런 갑질은 환영이다’ ‘대리점 구역을 보호해준 것은 오히려 잘한 것’ 등의 글이 올라왔다. 샘표가 보여준 정직한 기업문화가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박 대표와 아버지 박 회장은 쉽게 말해 은수저를 물고 태어났다. 여전히 회사에 나와 일하는 박 회장은 국무총리실 행정조정실장을 지내고 국민훈장 모란장까지 받은 잘나가던 관료였다. 창업자인 할아버지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장손 박진선 대표 역시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그를 설명할 때는 ‘수재’라는 단어가 따라 붙는다.

서울 경기중, 경기고를 다닐 때 1등을 놓치지 않았다. “당시는 전국 석차가 없어서 전국에서 몇 등을 하는지 잘 모른다. 다만 학교 다닐 때 1~3등을 왔다갔다 했다.” 학교 졸업 후 전국의 수재들만 들어간다는 서울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했다. 당시 전자공학과는 서울대 의대보다 점수가 높았다.

“아이를 박 대표처럼 공부 잘하게 만들 수 있는 비법이 뭔가”라는 사심 어린(?) 질문을 던졌다. “난 공부를 열심히 해본 적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건 무슨 소리일까.

“학창 시절 수학 시험에서 틀려 본 적이 없다. 외우고 있는 수학공식도 몇 개 안된다. 나는 공식을 외우지 않고 원리를 깨우쳤다. 원리를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것이 공부라고 생각한다. 친구들은 외우는 것이 공부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난 과외를 받아본적도, 학원을 다닌 적도 없다. 수업시간에 집중하는 게 내 공부의 전부였다. 집에서도 책을 펴본 적이 없었다.”

대학 입학 후 첫 학기 수학 시험. “1학기 내내 음악에 빠져 살아서 교재 한번 펴본 적이 없었다”지만 시험은 봐야했다. 시험 전날 교재를 펴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당시 시험은 리미트(lim). 배워본 적도, 공부해 본 적도 없는 분야였다. 박 대표는 7~8시간 동안 책을 보면서 리미트의 원리를 깨쳤다. “믿기 힘들겠지만, 이런 식으로 준비해서 수학을 다 맞았다. 애들 잠 안재우고 공부시키는 부모를 보면 정말 답답하다. 애가 깨어 있다고 공부를 하는 게 아니다. 암기를 시킬 게 아니라 원리를 파악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박 대표는 대학 졸업 후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전자공학과 석사를 마쳤다. 박사 과정은 ‘뜬금없이’ 오하이오주립대학에서 철학을 선택했다. 미국 대학 강단에서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기도 했다. “어떻게 사는 게 맞는 것인지, 마음먹고 살펴볼 수 있는 과가 철학과였다”는 말로 전공을 바꾼 이유를 간단히 설명했다.

유학시절 만난 아내는 아주대 고계원 교수(수학과)다. 자녀는 1남1녀, 모두 결혼했다. 가족 4명이 모두 서울대를 나왔다. 심지어 며느리도 서울대 출신이다. “사위는 카이스트 출신이다. 장학금 때문에 거기 들어갔다”며 박 대표는 웃었다.

박 대표를 포함해 모든 가족이 잘 나가는 셈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부족함이 없이 자랐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든든한 배경이 있었고, 공부도 잘했다. 부족한 것 없이 탄탄대로의 길을 걸어온 이들에게 부족한 게 있다. 평범한 사람에 대한 애정이 없을 수 있다는 것. ‘난 쉽게 했는데, 저 사람은 왜 저리 못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 장 프로젝트, 150여 개 레시피 선보여

“직원들 일하는 것에 만족하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다.

“나와 같은 이들의 울타리에만 머물면 평범한 사람의 세계를 보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 철학을 전공한 것은 사회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평범한 이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직원들의 실력을 높일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회사를 물려받는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던 박 대표. 1990년 그는 생각을 바꾸고 샘표 기획실장으로 입사했다. “가만히 살펴보니 회사가 망할 것 같았다. 할아버지가 갖고 있던 따뜻한 마음이 유지돼야 한다”면서 교수직을 그만 둔 이유를 밝혔다.

그는 샘표를 진취적으로 만들었다. 전산망을 구축해 샘표 사내 시스템을 선진화시켰다. 1997년 대표로 취임하면서 ‘샘표=간장공장’이라는 외부의 선입견을 깨려고 노력했다. 체질개선에 들어간 것이다. 세계적 규모의 최첨단 이천 공장을 완공했고, 충북 영동에 제2공장을 세웠다. 2006년 샘표 창립 60주년을 기념해 기획한 ‘샘표 아이장 캠페인’을 진행하기 위해 샘표 된장학교와 샘표 유기농 콩농장을 만들었다. 샘표 된장학교는 벌써 9000명의 수강생을 배출했다. 샘표 이천공장 옆에 마련한 2만3140㎡(약 7000평) 콩밭은 매년 소비자에게 분양한다. 소비자 스스로 콩을 재배해 장을 담글 수 있게 해 인기를 끌고 있다. 2013년 11월에는 ‘샘표 우리발효학교’를 만들어 발효를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은 수강생을 대상으로 강의를 제공한다. 2013년 5월 충북 오송에 ‘우리발효연구중심’이라는 연구개발(R&D)센터도 지었다. 150명이 생활할 수 있는 공간으로 200억원을 투자한 곳이다.

박 대표의 또 다른 프로젝트는 장의 세계화다. 2011년 부터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알리시아 연구소’와 손잡고 해외 장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간장, 고추장, 된장등 한국의 장을 유럽 음식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한다. 장을 처음 접하는 서양 셰프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장 컨셉트 맵’을 제작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150여 가지의 레시피를 선보였다.

박 대표가 벌이고 있는 이런 일련의 시도는 ‘샘표는 문화를 파는 기업’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문화기업이라는 자부심이 있다. 한국의 음식문화가 업그레이드된 데는 샘표의 역할이 굉장히 크다. 우리처럼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곳도 드물다.”

박 대표가 해결해야 할 일도 많다. 샘표는 간장 분야에서 1위를 하고 있지만, 고추장이나 여타 장에서는 경쟁 업체에 밀리고 있다. 2014년 흑초 백년동안이 자리 잡지 못한 것도 매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2015년 목표는 연두가 제자리를 잡아 매출을 올리는 것이다. “연두는 한식간장에서 출발했다. 세상에 없던 제품인데, 세계 모든 음식에 적용될 수 있다. 2015년 연두 매출을 흑자로 돌리는 게 목표다.”


Posted by duryd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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