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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주간지에서 펜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슬로우어답터만의 꼼꼼함(?)과 인사이트로 이 급변하는 세계를 다른 시각으로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duryd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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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TV, 구글의 크롬캐스트 등을 OTT(Over The Top)이라고 부릅니다.

OTT라는 단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면 얼리 어답터겠죠.


솔직히 이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이해하기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한국인터넷진흥원 정책기획팀 배병환 주임연구원이 쉽게 풀이를 해놨네요.

배 주임연구원의 설명을 옮기자면

"기존의 통신 및 방송 사업자와 더불어 제3 사업자들이 인터넷을 통해 드라마나 영화 등의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라고 정의를 합니다. 

Top은 TV에 연결되는 셋톱박스를 말한다고 하네요.

쉽게 풀이하면 SK브로드밴드나 LG유플러스의 셋톱박스라고 보면 될 듯합니다.

통신사업자가 아닌 이들이 제공하는 기기나 플랫폼을 OTT라고 보면 됩니다.


애플TV, 넷플릭스, 크롬캐스트, 훌루 등이 OTT 서비스입니다.

한국에 들어온 것은 크롬캐스트 밖에 없습니다.

애플TV는 아이폰이 한국에 상륙하면서 자연스럽게 주목을 받아서 이베이나 아마존을 통해 직구를 한 분들이 꽤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이베이에서 애플TV 3세대를 구입했죠.


이와 비슷한 OTT서비스로는 다음TV플러스가 있습니다.


제가 슬로우 어답터들을 위해서 애플TV, 크롬캐스트, 다음TV플러스를 사용기를 내보낸 적이 있습니다.

한번 읽어보시면 애플TV의 한계와 크롬캐스트의 불편한 점 등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왜 애플이나 구글 등의 글로벌 IT 기업이 TV라는 올드한 매체를 포기하지 못하는지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슬로우 어답터들에게 좋은 정보가 됐으면 합니다. 


SMART TV - TV로 진격하는 구글과 애플 

  

일반TV를 스마트TV로 만들어주는 기기 경쟁이 치열하다. 대표적인 제품으로 꼽히는 애플TV, 크롬캐스트, 다음TV플러스를 직접 사용해보고 기기들의 차이점과 경쟁력을 살펴봤다.


미국에서 수백만 대가 팔린 동글형 구글의 크롬캐스트(Chromecast)가 지난 5월 중순 한국에서 출시됐다. 구글은 정확한 판매량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한국에서는 출시 후 1개월 만에 2만여 대가 팔렸다.

크롬캐스트의 성공으로 애플TV, 다음TV플러스 같은 일반TV를 스마트TV로 만들어 주는 기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애플TV와 다음TV플러스는 셋톱박스형이고, 크롬캐스트는 스틱형 동글이다. 크롬캐스트의 성공에 자극을 받고 B2B(기업 간 거래)에 집중했던 다음TV는 스틱형 동글과 업그레이드된 셋톱박스형 제품을 출시하고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시장을 공략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2010년 당시 애플 CEO 스티브 잡스가 ‘취미’라며 애플TV를 출시한 이후 조용하던 스마트TV 기기 경쟁이 크롬캐스트 출시로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애플TV, 다음TV, 크롬캐스트를 사용해 봤다. 애플TV는 한국에서 정식 출시되지 않아 이베이에서 개인적으로 구매한 제품으로 비교했다.

애플TV - 단순함·에어플레이 기능 만족 높아


애플TV는 여느 애플 제품처럼 단순함이 빛난다. 일반TV에 있는 HDMI 포트에 꼽고 무선 인터넷을 연결한다. 작동은 리모컨과 아이폰 앱을 이용하면 된다. 버튼 3개만 있는 리모컨으로 글자를 입력하고, 콘텐트를 선택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다. 다음TV플러스 리모컨 뒷면에 있는 쿼티(Qwerty) 자판과 비교하면 애플 제품의 단순성은 놀랍다.

애플TV는 몇 번의 업데이트를 거쳐 콘텐트가 30여 개로 늘었다. 기존의 ‘유튜브’ ‘넷플릭스’ ‘훌루’ 등을 포함해 ‘디즈니주니어’ ‘PBS’ ‘블룸버그’ ‘크래클’ ‘야후스크린’ 등이 새롭게 추가됐다. JTBC와 MBN 등을 볼 수 있는 ‘KORTV’ 앱도 나왔다. 애플TV 콘텐트는 구매해야만 볼 수 있다. JTBC와 MBN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에게 영어공부를 시키기 위해 디즈니주니어를 보려면 결제를 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결제도 불가능해 미국 계정을 만들고 아이튠즈 기프트를 구입해야만 한다.

이처럼 한국에서는 애플TV를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한국 소비자는 ‘에어플레이’에 만족하고 있다. 컴퓨터나 아이패드, 아이폰에 저장된 콘텐트를 TV에서 편하게 볼 수 있는 미러링 기능이다. 가격은 99달러(약 10만원)다.


크롬캐스트 - 티빙과 호핑 콘텐트 결합이 장점

설치는 쉽다. 스틱형 동글을 TV에 있는 HDMI 포트와 무선인터넷에 연결하면 끝. 스마트폰(아이폰, 안드로이드폰 모두 사용 가능)에 크롬캐스트 앱을 설치하면 바로 사용할 수 있다.

크롬캐스트는 애플TV와 전혀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 애플TV는 30여 개 콘텐트 중에서 선택해 시청하는 형식이다. 크롬캐스트는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의 콘텐트를 TV로 캐스팅해주는 역할만 한다. 크롬캐스트와 스마트폰을 연결하면 스마트폰에서 보고 있는 유튜브 화면을 TV에서 볼 수 있다.

유튜브 화면을 TV에 캐스팅해도 스마트폰을 쓸 수 있다. 티빙과 호핑 앱을 스마트폰에 설치했다면 TV로 한국 방송도 볼 수 있다. 다만 7월 17일 현재까지 아이폰에서는 티빙과 호핑 앱을 크롬캐스트와 연결할 수 없다. 아직까지 크롬캐스트는 안드로이드 폰에서 사용해야 훨씬 편하다.

애플TV의 에어플레이 기능처럼 크롬캐스트도 스마트폰과 컴퓨터에 저장된 동영상을 TV에서 볼 수 있다. 크롬캐스트를 통해 동영상을 보려면 스마트폰과 컴퓨터에 플레이투게더, 올캐스트, 짐리 등의 앱을 깔아야 한다. 크롬캐스트를 이용해 TV에서 스마트폰과 컴퓨터의 동영상을 보는 것은 애플TV보다 훨씬 불편하다. 동영상이 끊기거나 자막과 화면이 맞지 않을 때가 있다.

구글은 이번 여름이 지나기 전에 미러링 기능을 추가하겠다고 밝혔다. 구글 아시아·태평양 지역 크롬캐스트 파트너십 총괄을 맡고 있는 미키 김은 “손쉬운 설치과정과 합리적인 가격이 장점”이라며 “‘캐스팅’을 통해 디지털 콘텐트를 TV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이 크롬캐스트의 경쟁력”이라고 설명했다. 가격은 4만9900원이다.


다음TV플러스 - B2C 시장 적극 공략할 계획

2012년 4월 출시돼 7월 현재까지 5만6000 대가 팔려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음TV플러스는 애플TV처럼 셋톱박스형 기기다. 설치 방법도 애플TV와 비슷하다. HDMI 포트에 선을 꼽고 무선인터넷과 연결하면 된다.

애플TV는 채널형 앱으로, 다음TV플러스는 실시간 TV(pooq)·키즈·스포츠·동영상 등 카테고리 앱으로 콘텐트를 선택한다. 카테고리를 클릭하면 세부적인 콘텐트가 나온다. 얼마 전에는 교육콘텐트 사업의 일환으로 ‘스터디+’ 카테고리 서비스를 시작했다.

하지만 콘텐트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 스포츠TV 카테고리에서 골프를 선택하면 콘텐트의 빈약함을 느끼게 된다. 다음TV 클라우드 앱을 통해 클라우드에 저장된 음악·영상·사진 등을 TV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은 특화됐다. 장점은 게임이나 pooq 같은 실시간 채널 앱을 직접 설치할 수 있다는 것.

다음TV 서진호 본부장은 “앞으로 B2C 시장도 적극 공략하겠다”고 밝혔다. 인터넷 브라우저를 TV 화면에 띄우고 키보드를 이용해 사용할 수 있다. 다음TV플러스의 가격은 19만9000원이다.

애플과 구글 그리고 다음까지, ICT 생태계를 이끌어가는 기업이 TV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는 ‘돈’ 때문이다. 미국의 유명 벤처캐피털 KPCB(Kleiner Perkins Caufield Byers)의 파트너 매리 미커가 올해 발표한 ‘인터넷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매체별 글로벌 광고시장에서 TV는 45%를 차지해 여전히 광고시장의 강자다.

인터넷 광고가 22%(430억 달러)로 2등을 했고, 인터넷·인쇄매체·라디오가 그 뒤를 이었다. 이에 반해 스마트폰의 광고시장은 4%(71억 달러)에 불과했다. 구글과 애플 등 글로벌 ICT 기업이 TV로 진격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인 것. KT경제경영연구소 이성춘 상무는 “모바일 광고는 여전히 한계가 많다. 구글과 애플이 TV 광고시장을 노릴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애플, 구글 등은 스마트TV 기기를 다양한 콘텐트의 플랫폼으로 만들려고 한다. TV콘텐트 플랫폼을 선점하면 광고는 뒤따라 온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콘텐트 수급이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에서 지상파 TV는 이들에게 콘텐트를 내줄 생각이 별로 없다. 이득이 되지 않아서다. 저작권 문제도 걸림돌이다. 이 상무는 “콘텐트를 어떻게 수급하느냐가 애플, 구글, 다음의 숙제”라며 “ 질 좋은 콘텐트를 제공할 수 있다면 TV 시장에 큰 영향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했다.


Posted by duryd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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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 어답터들에겐 관심이 없는 소식일테지만, IT 업계에서 주목하는 사건(?)이 오늘 시작됐습니다.

다음과 카카오의 합병을 정식으로 알리는 '다음카카오'가 10월 1일 공식 출범했습니다.


웨스틴조선호텔 그랜드볼룸은 상당히 넓은 장소인데, 기자들이 정말 많이 왔습니다.

그만큼 이날 발표되는 내용이 무엇인지가 초미의 관심사였죠.

슬로우 어답터지만, 저도 참석했습니다.

다음카카오가 내놓을 '한방'이 궁금했거든요.


다음의 최세훈 대표와 카카오의 이석우 대표가 다음카카오의 공동대표 체제로 움직이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다음카카오의 향후 행보를 보여줄 새로운 서비스는 내놓지 않았습니다.

내놓지 않은 것인지, 내놓지 못한 것인지는 좀더 지켜봐야 할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5월 합병 소식 이후 여러가지를 준비했지만, 프로젝트들이 덜 여문 것 같네요.


다음카카오가 지향하는 것은 '모바일 라이프 플랫폼 기업'이네요.

웹보다는 모바일에 치중한다는 거죠.

많은 이들이 다음이 카카오에게 먹혔다는 표현들을 많이 하는데,

다음카카오의 지향점을 보더라도 카카오의 힘이 더욱 커 보입니다. 

한남동에 있는 다음의 사무실도 카카오가 있는 판교로 옮긴다고 합니다.

자연스럽게 기자들 사이에서는 카카오에 힘이 쏠려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죠.

"서울과 판교의 거리가 멀어서 함께 있을 수 있는 곳을 찾다가 마지막 대안으로 나온 곳이 판교였다"고 다음카카오는 해명했습니다.


이날 가장 관심을 끈 내용 중 하나가 바로 텔레그램과 검찰의 SNS 모니터링이었습니다.

인터넷 검열은 사용자, 기업, 기자 등 모두에게 민감한 내용이었습니다.  




다음카카오 최세훈(), 이석우() 공동대표가 기자간담회에서 다음카카오의 CI 선보이며 포즈를 취하고 있는 자료 사진입니다. 



어떤 내용들이 오고 갔는지는 보도자료의 Q&A와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을 통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네요. 


Q 출범 후 김범수 의장(다음카카오 이사회의장)의 역할은?

A 다음카카오 통합법인 경영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지만, 대주주로서 다음카카오 미래사업 비전 및 방향성을 제시하는 역할을 담당할 예정이다.


Q 다음카카오의 비전과 그 의미는?

A 비전은 '새로운 연결, 새로운 세상(Connect Everything, 상당히 도발적인 캐치프레이즈로 느껴지네요)이다. 언제 어디서나 사람과 사람, 사람과 세상을 이어주고 연결을 통해 끊임없이 정보를 주고 받으며 비즈니스를 창출하고, 더 나아가 마음으로 소통하는 세상의 중심에 다음 카카오가 있고자 한다.


Q 다음카카오가 앞으로 주력할 사업 분야와 전략은?

A 보다 편리한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 서비스를 중점적으로 제공할 것이다. 강력한 소셜그래프를 가진 카카오의 모바일 플랫폼과 다음의 검색 서비스의 강점을 기반으로 사용자를 위한 보다 혁신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새로운 모바일 생태계의 발전을 위해 파트너사들과의 협력도 지속,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Q 기존 사업 조직은 어떻게 통합, 운영할 계획인가?

A 조직 운영은 수평적 조직문화와 빠른 의사결정을 위해 기본적으로 '팀'단위로 유연하게 구성되며, 규모에 따라 하위조직으로 파트와 셀을 운영할 계획이다.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을 덧붙이자면.

다음카카오는 현재 10개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업비즈니스팀, 지원팀 등으로 나뉘어있다고 하네요. 수평조직을 구축하기 위해 내놓은 안이라고 합니다. 구성원들은 서로 영어 이름으로 부르기로 했답니다. 최 대표는 윌리암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데, 다음카카오에서 3명 정도가 윌리암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프로젝트에 따라 팀의 구성이 달라지는 형식이기 때문에 플렉서블한 팀제라는 표현을 하네요.


Q 서비스 측면에서 어떠한 변화가 있을 예정인가?

A 사용자의 편의를 고려해 당분간은 기존 서비스를 유지할 계획이다. 추후 유사한 성격의 서비스는 서비스의 장점을 살리는 방향으로 통합/발전시키는 방향을 고려하고 있다. 


Q 사명을 다음카카오로 결정한 이유는?

A 다양한 아이디어를 검토했지만, 기존 사용자들에게 익숙한 양 사의 사명을 합친 다음카카오보다 더 뛰어난 이름이 없다고 판단했다. 


Q 합병 후 처음 출시되는 서비스는 무엇인가?

A 전략상 공개하지 못하는 점 양해해달라.



어쩌면 이날 가장 관심을 끈 것이 새로운 서비스가 뭐냐일 것입니다.

기자들의 질문도 여기에 집중이 되어 있었죠.

이석우 대표는 "어떤 서비스가 처음 출시될지 잘 모른다.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고 답변했습니다. 

과연 어떤 서비스가 다음카카오라는 이름을 달고 나올지 궁금합니다.


Q 카카오 검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 

A 사용자가 걱정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최고의 보안 기술을 가지고 있고, 자체 서버에 보관되는 기간은 매우 짧다. 유출은 없을 것이다. 다만, 공정한 법집행을 할 때는 검찰에 협조를 하고 있다. 


Q 검찰이 사이버상의 모니터링을 강화한다고 했다. 해외 메신저 앱(텔레그램을 말하죠) 인지도가 높아졌는데, 타격은 없나.

A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어떤 서비스라도 해당 국가의 법 적용을 받게 된다. 거기에 따른 정당한 협조는 해야 할 것이다. 타격이 얼마나 클지는 예상 못하지만, 큰 파장은 없을 것이다.




러시아 프로그래머가 만들었다는 메신저 앱 텔레그램.


지난 주말 트위터에서 화제가 됐던 앱이 텔레그램입니다. 

검찰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카카오톡에서 했던 이야기가 모니터링 당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에

많은 이들이 '털릴' 염려가 없다는 텔레그램에 망명을 시작했죠. 

저도 한번 스마트폰에 깔아봤습니다.

지난 주말에 10여 명에 불과했던 사용자가 수요일이 되니까 내 연락처에 있던 이들 중에 100여 명이 가입을 했더군요.

전파 속도가 정말 빠릅니다.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된 검찰의 사이버 모니터링 강화가 엉뚱하게도 잘나가던 카카오톡에게 영향을 준 셈입니다.

'정부의 관심이 오히려 독이 된다'는 말이 이번에도 맞는 것 같네요. 

예전에도 지메일로 망명한다는 소동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메신저까지 타격을 입게 생겼습니다.

텔레그램에 대한 대책을 묻는 질문에 "대책은 없다. 열심히 해야 한다. 카카오톡에 대한 오해도 약간 있는 것 같다"고 이 대표는 밝혔습니다. 



Q 조직통합과 조직개편에 대한 내부 구성원의 불만이 많다고 하던데.

A 우리의 조직통합과 개편 방식은 남달랐다. 보통은 통합방식을 결정하고 직원에게 통보하지만, 우리는 수평적 문화를 지향하기 때문에 통합을 어떻게 할 것인지 직원들의 의견을 들었다. 아지트나 게시판을 통해서 여러 방식을 통해 진행됐다. 그런 과정 속에서 어떤 안이 좋은지 이야기를 들으려고 했다. 제안과정에서 불만이 나온 것 같다. 



기자간담회에서 나온 내용입니다. 

다음카카오에 대한 향후 행보를 약간이나마 이해를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네이버의 독주가 한국 IT업계에 좋은 효과만 있는 것은 아니죠.

다음카카오의 합병이 네이버 천하에 균열을 낼지, 다음카카오 그릇에 균열이 생길지는 좀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다음카카오가 네이버와 치열한 경쟁을 하면서 좋은 서비스들이 속속 나왔으면 합니다. 

Posted by duryd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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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의 세계는 너무나 빨리 변합니다.

1980년대 후반 PC 시대가 열리고, 인터넷이라는 무한대의 공간이 시작되면서

IT만큼 빠르고 혁명적인 움직임이 분야는 없습니다.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가 아니면 IoT(Internet of Things, 사물인터넷), OTT(Over the top), 플랫폼 등

언론에 소개되는 단어조차 이해하기 힘든 시대가 됐습니다.

포브스코리아에서 IT 분야도 맡고 있기에 새로운 트렌드, 새로운 단어가 나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일을 하는데는 얼리 어답터가 되어야만 합니다.


한국은 IT 강국처럼 스마트폰 보급률이 세계 최고입니다.

IT의 새로운 기술이나 트렌드를 받아들이는데 한국 소비자만큼 빠른 나라는 없다는 이야기죠.

한국은 테스트 베드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세계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 시장에 속속 진출하는 이유(물론, 실패도 많이 하고 돌아가기도 합니다)입니다.


하지만, IT의 트렌드가 빠르게 생활에 스며들어도 IT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이들이 대다수일 것입니다.

애플TV가 나온지 수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사용해본 이들도 드물 것입니다.

구글 글라스가 혁명이라는 이야기를 듣지만, 아직도 구글 글라스는 한국에서 먼 이야기입니다.

삼성이 스마트싱스를 인수해 스마트홈 전략을 쓴다고 하지만, 여전히 스마트싱스는 생소한 일일 뿐입니다.


IT의 흐름에 조금 뒤쳐진다고 해서 우리 삶이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IT 트렌드를 조금 늦게 받아들인다고 해서 부끄러워 할 필요도 없습니다.

얼리 어답터가 할 일이 있고, 슬로 어답터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IT의 흐름에 뒤쳐진다고 생각하는 이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자 블로그를 개설했습니다.


슬로 어답터답게 PC와 인터넷을 다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90년대 초반 학번으로 대학을 다니면서 처음 접하게 된 것이 PC입니다.

하지만 PC도 전산실에서나 만질 수 있는 도구였죠.

자판 연습을 한다고 한매타자 게임을 하던 게 전부였습니다.


제가 가장 먼저 만진 IT 기기(?)는 워드프로세서입니다.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이 아니라 타자기 자판과 조그마한 화면, 그리고 인쇄가 되는 프린터가 한 몸뚱아리로 되어 있는 하드웨어입니다. 당시 과 신문을 만든 경험이 있는데, 사진과 비슷한 워드프로세서를 이용해서 만들었죠. 종이를 인쇄해서 격자판에 직접 오려 붙여서 판을 만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런 일을 했는지도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원시적인 형태였죠.


PC는 그냥 리포트를 쓰고 인쇄를 하는 기계에 불과했죠.

PC의 시대를 거쳐서 인터넷이라는 혁명적인 도구가 나온 것도 1990년대입니다.


1997년 대학생 기자로 ‘인터넷의 아버지’라는 전길남 카이스트 박사를 만나서 인터뷰를 할 때 전 박사님의 얼굴 표정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인터넷이라는 개념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대학생과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 얼마나 갑갑했겠어요. 인터뷰 도중 갑자기 일어나시더니 사무실에 있던 화이트보드에 인터넷 개념도를 직접 그려주시더군요. 저에게 인터넷은 넘사벽이었습니다. 그냥 사용만 할 줄 알았지, 인터넷이 왜 혁명적인 도구였는지는 전혀 감을 잡지 못했던 거죠. 


하지만 선수들은 PC와 인터넷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믿었죠.

그들이 바로 지금 IT 시대를 선도하고 있습니다.

시대의 흐름을 누가 먼저 이해하느냐에 따라 리더가 결정되는 듯 합니다.

90년대도 아닌 1980년대 중후반 학번들이 한국의 IT를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왜 그들이 IT 시대 리더가 될 수 있는지를 취재해서 기사로 냈습니다.

그때 그 시절, 응답하다 1986입니다.  


201409호 (2014.08.23) [130]확대축소프린트블로그 저장목록보기
IT LEADERS - PC·인터넷·운이 만든 86학번 리더들
IT 생태계를 이끌어가는 86학번의 파워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부터 엑스엘게임즈 송재경 대표까지 많은 86학번들이 IT 업계의 리더로 활발하게 뛰고 있다. 86학번이 이 분야의 리더가 된 이유를 찾아봤다.

(왼쪽부터) 김정주 NXC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1980년대 중반부터 대학가에 PC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김정주 NXC 회장·바람의 나라 등의 게임을 개발한 엑스엘게임즈 송재경 대표·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서울대 컴퓨터공학과),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서울대 산업공학과), 이재웅 다음커뮤니케이션 창업자(연세대 컴퓨터과학과), 곰플레이어로 유명한 그래텍 창업자 배인식 전 대표(국민대 금속공학과)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86학번’이라는 것. 국내 IT(Information Technology) 업계를 선도하는 이들을 보면 ‘1986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지난 5월, 한국 IT 업계는 다음과 카카오의 합병 소식에 숨죽였다. 결과를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큰 변화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NHN이라는 공룡과의 경쟁에 많은 이들이 지켜보고 있다. 86학번이 다시 IT 흐름을 바꿔놓는 쇼킹 뉴스를 만든 것이다. 86학번은 어떻게 IT 리더가 됐을까.

“1980년대 후반은 PC가 보급되기 시작하던 때였고, PC는 우리들의 무기였다.” 얼마 전 그래텍을 후배에게 물려주고 야인이 된 배인식 전 대표의 설명이다. 그 당시 각 대학에는 PC가 마련된 전산실이 신설되기 시작했다. 서울대에는 전산원이 생기고, 학부 별로 컴퓨터실이 설치됐다. 하지만 기업과 학교 등 대다수 기관은 여전히 윈도우즈가 아닌 유닉스 운영체제를 사용하고 있었다.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이창건 교수(서울대 컴퓨터공학과 87학번)는 “PC에 별 관심이 없었던 때였다”며 “80년대 후반 PC 사양이 좋아지면서 유닉스와 경쟁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기업과 기관에서 PC를 ‘장난감’이라며 무시한 탓에 PC에서 사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는 거의 없었다. 결국 PC에 미친 괴짜들이 직접 나섰다. 대학가에 컴퓨터 동아리가 속속 생기고 유니코사(UNICOSA, 전국대학컴퓨터서클연합)에 컴퓨터 고수가 모여들었다. 변변한 책자 하나 없던 시절, 선배는 후배를 직접 가르쳤다. 학생들이 직접 소프트웨어를 만들기도 했다. 심지어 도깨비 카드라는 하드웨어(용량이 큰 소프트웨어를 담을 수 있는 하드디스크)를 만들어 PC에 꽂아 쓰는 이도 나타났다. 용산전자상가는 학생들이 만든 프로그램과 하드웨어를 복제해 팔았다. 한양대 학생들은 바른글이라는 워드프로세서를, 서울대 컴퓨터동아리는 아래아한글1.0을 내놓았다. 이처럼 80년대 중후반 학번 학생들은 PC시대를 선도했다.

정부도 발빠르게 움직였다. 1987년 당시 오명 체신부 차관은 유니코사에 가입한 대학 동아리에 PC통신을 할 수 있는 XT급 컴퓨터와 모뎀, 프린터를 설치해줬다. 이듬해 유니코사 회장을 맡았던 배 전 대표는 “그때 정부에서 유니코사에 지원해준 컴퓨터 비용이 각 학교마다 700만원 정도였다”고 했다. “정부는 88서울올림픽 전산망 운영에 유니코사 회원 300여 명을 투입시켰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차관에서 장관에 오른 오명 체신부 장관은 ‘적은 투자로 큰 성공을 거뒀다’고 칭찬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86학번에게 PC는 경쟁력이었고 무기였다. 이해진 의장, 김범수 의장, 김정주 회장 등은 선배들과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공부 대신 취업을 선택한 것. 85학번까지는 대부분 석사를 마치고 유학길에 올랐다. ‘석사장교’ 제도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1984년부터 1992년까지 운영됐던 단기 장교 복무제도다. 석사소지자 중 시험으로 선발해 6개월간 군사훈련을 마친 후 소위 임관과 동시에 전역한다. 

당시 일반병의 복무기간은 3년으로 석사장교 제도는 유학을 꿈꾸는 이들에게 최고의 혜택이었다. 하지만 이 제도는 1990년 4월 1일 ‘대학원 졸업생 등의 병역특례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폐지되면서 끝났다. 1989년 이전에 대학원에 입학해 재학 중인 학생까지는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1990년에 대학원에 입학할 수 있는 86학번은 석사장교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이창건 교수는 “86학번 선배들은 박사 과정 대신 창업을 많이 했다”고 설명했다.

86학번은 석사를 마치고 유학길에 오르는 대신 병역특례자로 취직했다. 1990년대 초 이해진 의장과 김범수 의장은 삼성SDS, 김정주 회장은 대덕전자에 병역특례자로 입사했다. 배인식 전 대표는 군대를 다녀온 후 1993년 삼성전자 소프트웨어사업팀에 들어갔다. 삼성은 다른 대기업보다 일찍 컴퓨터 고수들에게 관심을 기울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1년부터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는 소프트웨어멤버십 제도다. 내노라하는 컴퓨터 괴짜들이 이 제도를 통해 삼성에 입사했다.


벤처 인프라 갖춰진 상황에서 창업했던 세대

삼성에 입사한 86학번은 PC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인재들이었다. 직장 선배나 부서장들도 갓 입사한 신입사원에게 컴퓨터 관련 프로젝트를 일임할 정도였다. 배 전 대표는 “소프트웨어 기획부터 개발, 홍보까지 혼자 다 알아서 했다”고 돌이켰다. “용산에 가서 직접 물건을 팔기도 했다. 김범수 의장이나 이해진 의장도 인터넷 시대를 대비한 일을 스스로 찾아서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중요하지 않은 부서에 있었지만, 내 일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창업의 밑거름이었다.” 이해진 의장은 삼성SDS 재직 당시 네이버의 기초가 되는 검색프로그램을 연구했다.

이들이 창업에 관심을 가질 때 한국사회에서는 벤처창업 붐이 일었다. 코스닥 시장이 열렸고, 창업투자사도 등장했다. 비운의 벤처1세대로 불리는 메디슨 이민화 전 회장(현 카이스트 교수)은 저서 『한국벤처산업발전사』에서 그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적었다. ‘1996년부터 벤처기업협회를 중심으로 제기된 벤처기업 육성책을 정부가 받아들이면서 벤처 인프라가 갖춰지기 시작했다. 

특히 코스닥 시장 활성화와 1997년 제정된 벤처기업 특별법에 담긴 제도 등이 주요 인프라다. 여기에 인터넷이 확산되면서 창업전선에 뛰어든 군단이 (벤처)3세대를 형성했다.’ 1994년 김정주 회장이 넥슨, 1998년 김범수 의장이 한게임, 1999년에 이해진 의장과 배인식 전 대표가 각각 네이버와 그래텍을 설립했다. 이민화 전 회장은 이들을 “20세기 마지막 창업열차에 오른 신예그룹”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IT 분야에 큰 흔적을 남기고 있는 86학번의 또 다른 공통점은 누구보다 앞서 인터넷의 가능성을 점친 것.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권태경 교수(서울대 컴퓨터공학과 89학번)는 “선배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1990년대 중반에 인터넷 시대가 열렸지만, 인터넷 생태계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예측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그들은 그런 눈을 갖고 있었다. 여기에 벤처 붐이라는 시대적 상황까지 맞아떨어졌다. 86학번은 운도 좋았다.” 86학번이 IT의 리더가 될 수 있었던 것은 PC와 인터넷 그리고 운이라는 3박자가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끝)


Posted by duryd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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